
엔도 센리츠는 제 형의 바이올린 소리를 좋아했다.
그의 성정처럼 부드러우며 때로는 힘 있게 올라가고,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통하도록 이끌어주는 선율이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저명한 음악가. 그의 형들도 음악의 길을 걸었고, 자연스레 막내인 센리츠 역시 그 이름답게 어릴 적부터 음악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다.
다만 부모님은 그의 연주에 큰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칭찬하면서도 너희 형들은, 하고 뒷말이 따라붙었다.
아이인 센리츠가 보기에도 형들의 연주는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으므로 그들을 칭찬하는 말에 질투를 느끼진 않았으나, 부모님을 제 연주로 만족시키지 못한 것에 종종 시무룩해하곤 했다.
그의 큰형은 아이가 시무룩해할 때마다 상냥하게 일러주었다.
"나도 리츠 너만 할 때는 지금 너보다도 실력이 좋지 못했어. 너는 재능이 있으니 클수록 더 넓은 세계와 깊은 심상을 갖고 너만의 음악을 해낼 수 있을 거야."
그날이 기대된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신기하게도 근심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형은 마법사 같았다. 연주뿐만 아니라 말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한편으로, 센리츠는 부모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었다. 가족의 애정이 중요한 나이이기도 했지만, 어서 형이 기대하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형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피아노에 몰두하는 시간이 늘었다. 연습량이 늘어나자 부모의 반응도 달라졌다. 제법 흡족해하는 기색이었다. 형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린 센리츠는 깨달았다. 아, 이 정도로 연습하면 되는구나. 노력하면 가족들을 더 기쁘게 해줄 수 있구나.
제 연주로 사람들이 짓는 미소가 좋았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순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피아노 연주는 그의 삶이 되었다.
엔도 형제는 합주하는 것을 즐겼다. 센리츠는 자랄 수록 형들을 제법 열심히 따라잡았다. 어린 동생이 무리하는 것 같으면 형들은 아이의 템포에 맞추어 주기도 했다.
부모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음악은 언제나 그들을 하나로 이어주었다.
센리츠는 합주 시간을 좋아했다. 언제까지나 이런 순간이 이어질 거라 믿었다.
***
그는 '사고' 이후 처음으로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렸다.
♬─…
직감적으로 느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아무것도 와닿지 않았다. 힘 조절이 되지 않았다. 피아노에서 들리는 건 비명과도 같은 소리였다. 딱딱한 금속과 건반의 마찰음.
건반에서 울리는 음이 몸 안을 맴돌며, 음악과 자신이 하나로 이어지는 과정이 없었다.
발전기 소리만이 맴돌았다. 소음으로 가득 찬 몸은 다른 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몇 번이고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처음으로 좌절했다. 이건 그의 노력 여하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그에게 피아노 연주는 태생부터 정해진 길이었다. '엔도'의 이름을 받은 모두가 그러하듯, 당연히 자신 역시 걷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것.
그렇다면 길을 잃어버린 나는 이제 어떤 삶을 살아야 하지?
음악으로 이어진 울타리. 그 바깥으로 튕겨 나간 그는 제 가족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화목해 보였다.
엔도 센리츠는 처음으로 소외감을 느꼈다.
*
"리츠, 무슨 소리 안 나?"
"무슨…소리?"
"뭔가 울리는 것 같은 진동음…?"
"…아니… 난 안 들리는데?"
"그래? 이상하네…."
음악가 집안이란 그런 것이다. 귀가 트여 있는 만큼, '잡음'에도 예민할 수밖에 없다.
가족이 이따금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의문을 표하면, 센리츠는 그때마다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소음의 원인이 자신이었으므로.
제가 숨을 참으면 이 발전기도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만 있으면 그는 연주 시간 내내 지옥 같은 고통의 시간일지라도 숨을 참았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호흡의 비정상을 느낀 세포는 더욱 활성화되어 소음은 아까보다 한 차례 커질 뿐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할 수 있는 건 구역감을 참으며 빠르게 그 자리를 뜨는 것밖에 없었다. 가족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것만큼은.
하지만 들키지 않아도 나는 이미……
***
UGN의 R랩에서는 틈틈이 저를 불렀다. 새로운 몸에는 여전히 불안정한 요소가 있었기에 검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태 모르던 생을 배워나가는 것은 시간이 드는 일이었다. 그런 날에는 거리에 어둠이 깔린 뒤에야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어느 날은 귀가했더니 그의 큰형이 대화를 하자고 불렀다. 평소와 달리 드물게 웃지 않는 낯이었다. 대신 그 눈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으나 대화를 피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자신이 피아노를 치지 않게 된 지 3개월이 지났다는 서두에는 시간이 빠르네, 라는 대답을 간신히 돌려주었다.
이 이야기를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으나, 사건도 시간도 그를 기다려주는 법이 없었다. 이번엔 그것이 형의 입을 빌렸을 뿐이다.
"휴식이 필요한 건 이해하지만 외상도 없었다며. 이제 연습도 병행해야지. 놀러 다니기만 하는 건 그만하고."
"그게..."
"연주회도 벌써 몇 번이나 미뤄졌잖아. 부모님도 걱정하고 계셔. 뭔가 문제가 있는 거니? 말해보렴."
센리츠는 그 걱정어린 말에 무심코 모든 대답을 토해낼 뻔했다.
있잖아, 형. 외상이 없었다는 건 거짓말이야. 그날 나는 너무 아팠는데… 눈을 뜨니까 내 몸이 기계가 됐대. 그리고 이 모든 건 전부 비밀이래. 나, 다시 피아노 치고 싶어. 그런데 피아노를 치는 감각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아. 칠 수가 없어, 형. 어떻게 해야 해?
그는 목구멍까지 치솟은 말들을 삼켜냈다.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거니와 애초에 믿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스스로도 지금 상황이 거짓말 같았으므로. 그래서 다른 말을 꺼냈다.
"나… 피아노 그만둘까 싶어."
"뭐?"
대번에 상대의 안색이 달라졌다. 그의 형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떴다가, 제 앞에 선 동생을 유심히 보았다. 동생은 몇 달 사이에 분위기가 조금 바뀐 것 같기도 했고, 어쩐지 부쩍 말 수가 줄었다. 지금도 그냥 하는 말은 아닌 듯하나, 진심으로 하는 말도 아닌 것 같았다.
"리츠, 제대로 설명하렴."
"그, 뭐랄까… 최근에 생각해 봤는데, 이건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그래서… 다른 진로를 찾아보려고."
"리츠."
거짓말인게 당연했다. 그의 동생은 피아노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아이였다. 그럼에도 엉뚱한 소리를 해 대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는 늘 솔직한 동생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두꺼운 벽 하나라도 그들 사이에 끼워진 듯했다.
센리츠는 센리츠대로 답답해서 펄쩍 뛸 것만 같았다. 지금이라도 제 몸을 열어서 전선과 회로를 보여줄 수만 있다면 이렇게 멀리 돌아갈 필요는 없을 텐데 싶었다. 이해받고 싶었으나 내보일 수 있는 게 없는 소년은 제자리만 빙글빙글 돌았다.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게 이토록 원망스러운 것인지 몰랐다. 그 원망조차도 스스로를 향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의 설명을 포기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의 형은 이마를 짚고는 한숨을 쉬었다. 음악은 그들의 삶이었다. 이렇게 내팽개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형제 이전에 음악가인 그는 제 동생을 처음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모르겠다. 이제 와서 다른 진로라니… 막 던져본 말이라도 좀 지나치구나. 하지만… 만에 하나 진심이라면, 나는 이제 더 할말이 없다, 리츠."
"…! 형…"
"정정하려면 지금 해. 그냥 해본 소리였다고."
"그건……"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짧은 침묵 속. 대답은 없었다. 동생의 시선은 바닥을 향한 채 흔들렸고, 형은 그런 동생을 잠자코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실망이다, 센리츠."
"……"
"새 진로……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말을 마치고 그의 형은 자리를 떴다. 나무 바닥이 밟히는 소리가 멀어져도 센리츠는 시선을 바닥에서 들어 올리질 못 했다.
그는 제 형의 바이올린 소리를 좋아했다. 때때로 연습 삼아 그와 합주하는 게 기뻤다. 언젠가 자신도 형처럼 유명해진다면.
같은 무대에서 함께 연주하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정적만이 남았을 때, 알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이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었다는 걸.
그는 그제야 간신히 걸음을 떼어낼 수 있었다.
그날 밤은 비가 왔다.
늦게까지 운영한 스터디카페에는 이제 히라이시 케이스케만이 남아 있었다. 그가 뒷정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카페 입구의 문이 열렸다. 비에 잔뜩 젖은 소년은 그에게 있어서 꽤 낯이 익은 손님이었다. 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마 빗물 탓일까? 그에겐 눈물을 흘리는 기능은 존재하지 않았으니.
"저, 죄송합니다… 한동안 여기서 지내도 괜찮을까요?"
그럼에도 그 카페의 점장은 무언가를 생각하듯 한동안 소년을 바라보다가, 수건을 건네주고 그를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용했다.
처음으로 도피처가 생긴 날이었다.